끄떡하면 사행으로 몰아붙여 '단죄'…더 이상의 '대못질'은 곤란하다

2008년, 2월 이 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치 캐치프레이즈처럼 사용한 키워드는 ‘기업 프렌들리’였다. 그는 기업 활동에 어려움을 주는 각종 규제의 대못들을 모두 뽑아 내겠다며 기업과 국민 앞에서 선언했다. 기업가 출신인 이 대통령의 이같은 의지의 표명은 그러나 잠시 반짝했을 뿐 오래가지 않았다. 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대선에서 당선된 그에게 혁신과 개혁이란 용어는 사실 허울 좋은 외투에 불과했을 뿐이다. 산업 곳곳에 박혀있던 규제의 못들이 시원스럽게 빠져 나갈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들 표정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또다시 구설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특히 게임은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로 빚어진 사행의 여파로 인해 움직임조차 조심스런 시기였다. 그런 때에 집권당의 대표라는 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4대 악 가운데 하나가 게임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알려지자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등 관련부처는 물론 청소년 보호단체들이 득달같이 나섰다. 비행 청소년들의 탈선 원인을 게임으로 지목했고,  도박으로 인한 가정 파탄의 사례를 쏟아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게임 도박'에 빠져 가족이 해체됐다는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다. 비행 청소년들의 탈선 배경 역시 게임보다는 가정 내 불화 등 다른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란 연구보고서들이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게임에 대한 마녀 사냥은 멈추지 않았다.

2009년, 2월 게임산업협회는 새 회장에 김 정호 NHN 한게임 대표를 만장일치의 결의로 선임했다. 그는 사실, 자신을 드러내는 스타일의 인물이 아니었다.  막후에서 활동하는, 마치 베일에 가려진 참모형의 장수였다. 그런 그가 권 준모 회장에 이어 4대 회장에 취임한 것이다.

그의 취임에 대해 협회 안팎에선 여러 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하나는 함량에 맞는 인사냐는 것이었는데, 그같은 지적은 김 회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한게임 대표이전 그는 이미 NHN 차이나와 아워게임의 대표를 역임했으며,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 작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다름아닌 김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굳이 대외 업무직을 수행해야 하는 협회장직을 맡도록 한 배경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그가 한게임 유료화의 1등 공신인데다, 게임과 사회에 대한 균형 감각이 탁월하는 점이 높게 평가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그의 첫 느낌은 기업가라기 보다는 사회봉사직을 맡고 있는 수도승처럼 느껴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에게 엄중하고 무거운 책임이 주어진 것은 분명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논란이 적지 않았던 게임은 고스톱, 포커 등 웹보드 게임이었다. 점수를 올린 금액에 대해 환전 등 현금화를 할 순 없지만, 일각에서 이를 편법으로 활용하는 게 문제가 됐다. 지금도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 게임 내에선 절대 현금으로 쓸 수 없다. 하지만 게임의 사행화 및 도박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웹보드 게임은 단골 손님처럼 규제 대상에 올랐다.

김 정호, 그가 나선 것은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웹보드 게임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와 기업의 혁신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10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그가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더 이상 게임계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NHN에서도 미련없이 떠났다. 그의 사임에 대해 협회와 회사측은 일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뒤늦게 알려진 바로는 그가 국회에 불려간 국감 자리에서 의원들에게 언어 폭력에 가까운 난타를 당한 데 따른 정신적 충격 때문이라는 설이 파다 했으나, 그보다는 현실적 장벽에 부닥친 자신의 한계를 실감했기에 미련없이 자리에서 물어난 것이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는 웹보드게임에 대해 대대적인 손질을 가했다. 이 부문에 대한 매출을 대폭적으로 하향 조정하고, 웹보드 게임에 대한 기업들의 비중 축소 등을 강력 주문했다. 또 일부 아이템의 거래를 금지하고, 일정 수익에 대해서는 사회에 환원토록 하는 등  자율 규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 호평을 받았다.

2023년, 2월 국민의 힘 소속의 하 태경 의원이 최근 게임과 사행콘텐츠를 분리 관리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사행 콘텐츠를 철저히 분리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게 하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여기에는 확률형 아이템과 웹보드 게임 등 사행 행위를 모사하는 게임 등이 대거 포함돼 있다.

또 이 법안은 아직까지 명시적인 조항들 뿐이기 때문에 시행 규칙 등 세부 지침이 어떤 방식으로 내려질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사회적으로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사행 게임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수위의 관리 감독이 이뤄질 개연성이 커 보인다.

이와는 별개로 이들 게임을 서비스하는 업체들의 경영 부담은 물론, 이들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저하로, 그렇잖아도 긍정적이지 못한 게임계의 이미지에 더 나쁜 색을 입힐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제도권의 인내심이 너무나 형식적이고 생색 내기에만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산업계의 역사는 60여년에 불과하고, 국내 게임업계의 업력은 겨우 20여년을 넘어서고 있다. 갑자기 덩치가 커져 그렇다 하겠지만 제도권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윽박지르는 모습이다. 스스로 가는 길도 까닭없이 막아서려 할 뿐이다. 그만큼 받았으니까 돌려주겠다고 하는데도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파이가 작다는 것이다. 

 김 정호 회장의 낙마는, 어찌보면 업계가 자율적으로 해 보겠다고 하는데 제도권에서 거침없이 그 의지를 꺾어버린 결과로 빚어진 사태라고 생각한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제도화와 웹보드 게임의 사행 단죄 움직임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을성 없이 휘두르는 또다른 폭력이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 규제의 칼날을 세웠던 때보다 자율에 의한 기업 프렌들리 시기에 기업과 산업, 문화가 꽃을 피웠다.  

2016년. 2월 겨울 동장군이 물러날 즈음 게임업계에 훈풍의 소식이 전해졌다. 업계의 자율규제를 긍정적으로 내다본 정부가 웹보드 게임에 대한 규제 완화를 결정했다. 또 사행 문제는 또다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여론을 수용하고 업계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이후 웹보드게임에 대한 사행 논란은 세간에 일체 등장하지 않았다. 고작 변죽만 울렸을 뿐이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도 이같은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끄떡하면 업계에 대못질을 해대서는 또다른 대못만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

[ 본지 발행인 겸 뉴스 1 에디터 inmo@tgdaily.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