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가치 훼손 등 시장 교란 우려 … 한시적 금지 조치 등 대책 마련 절실 

지난해 초 미국 금융의 중심 월스트리트를 발칵 뒤집어놓은 ‘게임스탑' 사태는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오프라인 게임 유통사인 게임스탑은 업황 위기와 불투명한 전망 탓에 공매도 세력의 타킷이 됐다. 이들은 주가가 고평가라는 공매도 리포트를 발간하고 과도한 물량 공세에 나섰다. 이런 사실이 레딧 주식토론방을 통해 알려지자, 이에 격분한 개미들이 역으로 헤지펀드 공격에 나섰다. 개미 군단의 공격은 단순했다. 이들은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수한 뒤 계속 보유하는 전략으로 유통주식 수를 확 줄였다.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공매도 세력은 큰 손실을 봤다. 일부는 파산에 이르렀다. 

게임스탑 사태는 주류 금융세력과 개미 투자자들이 주식 공매도를 놓고 벌인 싸움이다. 이는 현재 공매도 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한 한국 증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자칫 국내에서도 한국판 게임스탑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국내 증시에서도 게임주가 공매도 세력의 집중 타깃이 됐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게임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바이오·제약과 함께 증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섹터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위세는 공매도의 집요한 공세에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특히 올들어 게임주에 베팅한 개인 투자자들은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끝 모를 하락장에 최근 1년 사이 반토막 난 게임 종목이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바닥이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물론 올들어 국내 증시 환경이 녹록치 않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코로나 대유행의 긴 터널에서 빠져 나올 때쯤 터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에너지와 원자재 수급대란으로 물가가 폭등했으며, 이에 미국은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잇단 금리 인상에 나섰다. 환율이 급등하자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 투자자들은 증시에서 돈을 회수하기 바빴다. 여럿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국내 증시는 힘을 잃었다. 그렇다고 해도 게임주의 과도한 하락세는 비정상적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은 에너지나 원자재 가격 급등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거의 무관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침체 또는 소비위축을 얘기하는데, 그간 게임은 경기침체시 방어주로 각광을 받아왔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 주목받았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더욱이 환율 급등의 경우 최대 수혜자는 해외 매출 비중이 큰 게임업체들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올들어 게임업체들의 실적이 기대치에 다소 부합하지 못했다. 글로벌 흥행작들도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공매도 세력들이 넘볼 정도의 상황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게임은 이들의 집중 타깃이 됐다. 왜일까.

공매도는 특정 종목의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해당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실제로 주가가 하락하면 다시 사들여 차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즉, 게임주의 공매도 비중 증가는 게임산업의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정말 그럴까.

올해 가장 주목할 업체로 넥슨이 꼽혔다. 수년 간의 공백기를 깨고 올해 가장 핫한 신작들을 대거 출시키로 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상반기에 ‘던전앤파이터 모바일’로 당당히 구글 매출 1위를 달성했다. 그 결과 넥슨은 2분기 호실적을 거뒀다. 지난 달 출시한 또 다른 신작 ‘히트2’ 역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이다. 따라서 상승세는 연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그래서 일까. 일본에 상장돼 있는 넥슨 주가는 증시 침체에도 불구하고 나홀로 승승장구 중이다. 오죽했으면 넥슨을 팔면, 국내 주요 게임 상장사들을 모두 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 상황이 등장한다. 넥슨 자회사 중 국내 유일 상장업체인 넥슨게임즈의 경우 잇단 호재에도 불구하고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바로 공매 세력의 공략 1호로 지목된 탓이다. 넷게임즈와 넥슨지티의 합병회사로 새출범한 넥슨게임즈는 합병 및 신작 발표 등 호재가 겹치며 투자자들의 관심 속에 게임주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6월10일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이날 코스닥150에 신규 편입되자 마자 먹잇감을 찾던 공매 세력의 집중 공략을 받게 됐다. 코스닥150 편입에 환호하던 투자자들을 비웃듯, 넥슨게임즈는 불과 사흘만에 공매도 과열종목으로 지정됐다.

이후에도 공매 세력의 공격은 집요했다. 호재는 무시하고 사소한 악재를 이용해 물량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가까운 예로 지난 달 신작 ‘히트2’가 출시되던 날, 일부 언론의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앞세워 물량을 쏟아냈다. 그 결과 넥슨게임즈는 신작 출시 당일 역대급 하락률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히트2’는 공매 세력의 바램과 달리 양대 마켓 1위를 궤찼다. 이 소식에 개미들이 몰렸지만, 공매 세력을 당해낼 순 없었다. 이날 역시 하락 마감한 것. 

주식 시장의 이상 과열을 막기 위해 공매도가 필요하다는 억지 주장을 펼친 공매세력의 민낯이 들어난 한 장면이다. 공매도의 순기능을 얘기하지만 외국인들의 공매도 비중이 늘면 오히려 변동성을 확대시켜 증시를 교란하고 기업의 정당한 가치를 왜곡시킬 뿐이다.

앞서 넥슨게임즈 사례를 들었지만, 게임주 중에는 훨씬 가혹한 경험을 한 종목들이 비일비재하다. 크래프톤, 엔씨소프트,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 등 모두 세계 일류급의 게임업체들이다. 그럼에도 국내 증시에선 푸대접을 받고 있다. 공매도의 한낱 먹잇감으로 전락한 상태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공매도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여론이 들끓을 때마다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전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부 발표직후 잠시 주춤했던 공매세력들은 이를 비웃듯 연일 공매물량을 퍼붓고 있다. 솜방망이 대책임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대책은 공매 금지다. 이것이 불가하다면,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2020년처럼 한시적 공매금지라도 당장 시행해야 한다. 분노한 개인 투자자들이 ‘트럭 시위’에 나서기 전에 합당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더게임스데일리 김종윤 뉴스2 에디터 jykim@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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