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혜안 존경스럽기까지…빈소 마련치 못해 송구할 따름

김 정주, 그가 바람처럼 떠나갔다. 생을 달리한 지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그의 빈자리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빈소를 찾아가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찾아가지 못한 게 아니라 그런 자리가 없었다. 그가 왜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가야 했는지, 그가 왜 그렇게 외롭게 혼자 짐을 지며 바람처럼 스러지며 가야 했는지 황망할 따름이다.

김 정주 만큼 파란만장한 게임 기업소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산업의 성상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조그마한 움직임과 흔적을 남겨도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아는 곳이 게임계다. 그런데 그의 족적은 남 달랐다. 동으로 갈 것이라고 예측하면 그는 마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며 서쪽으로 향했고, 예상질의에 대한 해답을 내놓으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답을 설명했다. 2011년 12월14일. 이날은 넥슨 재팬이 일본 도쿄 거래소에 첫 상장한 날이다. 이럼으로써 한국 게임업체가 일본에 첫 상장되는 사례가 됐고, 일본 게임기업 닌텐도에 이어 시가 총액 2위를 자랑하는 게임기업이 됐다.

넥슨의 일본 상장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가능성은 있었으나 넥슨이란 기업의 상징성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거침없이 일본 상장을 추진했다.

이를 두고 여러 얘기들이 흘러 나왔다. 한국의 게임규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과 함께 한국에 상장하게 되면 상장 열매를 거둔 댓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가 그같은 노력을 피하기 위해 그런 것이라는 얘기들이 쏟아졌다.

사실, 그는 부를 영유하고 과시하는 스타일이 못됐다. 필자가 그를 만날 때마다 그가 제대로 된 의복을 입고 나온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오로지 평상복 차림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편하면 좋은 옷이라고 했다. 그가 상장을 통해 얻어진 3조원대 (당시 기준) 의 자산은 그저 그를 감싸고 있는 의복이자 또다른 짐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까 그의 일본 증시 상장 결정은 게임 왕국 일본에 당신들과 겨룰 수 있는 한국 게임 기업이 이렇게 버젓하게 있음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광폭 행보는 늘 업계의 화제거리이자 화두가 됐다.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그에게 있어선 평상 일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건이 넥슨재팬의 엔씨소프트 주식 매입이었다. 넥슨 일본 상장의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인 2012년 6월, 김 정주는 넥슨재팬을 통해 엔씨소프트 김 택진 사장 지분 가운데 14.68%를 8000 여 억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이같은 거래의 배경에 대해 양측은 일체 말이 없었다. 단지 그렇게 됐다는 펙트만 세상에 알렸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시장은 불이 났다. 경쟁사 가운데 최대 라이벌 기업인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넥슨이 매입했다고 해도 빅뉴스일 터인데, 엔씨소프트 사장의 지분을 사들였다고 하니까 시선은 때 아니게 엔씨소프트 김 사장 쪽으로 쏠렸다. 하지만 그 때도, 그 이후에도 이에대한 양측의 정확한 언급은 없었다.

잊혀질만 했을까. 잠시 소강 상태에 빠져있던 넥슨과 엔씨소프트에 또 일이 빚어졌다. 이번에는 아주 격한 반응이 오고갔다. 넥슨측에서 슬그머니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장내에서 0.4% 정도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넥슨측의 지분은 15.08%에 달해 대주주로서 역할을 맡게 된다.

문제는 넥슨측에서 매입 배경과 과정을 엔씨소프트에 사전 설명이 없었던 것이다. 김 정주가 또다시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엔씨소프트의 설명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과가 좋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김 정주의 입장과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조심스럽게 매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게 엔씨소프트측의 반응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김 정주, 그와는 필자와도 악연이 있다. 유명을 달리한 그와의 관계를 언급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고,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필자는 그 당시의 그 결정을 그 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의 논쟁은 '메이플스토리’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게임은 국민게임이자 청소년 게임으로 불린다. ‘메이플스토리’를 모르면 간첩이나 다름아니다. 필자는 그를 만나 ‘메이플스토리’를 청소년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대하는 만큼의 수익을 거뒀으니, 이젠 그들에게 돌려줘도 되지 않겠느냐는 지론이었다. 하지만 그는 답을 주지 않았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그가 내 얘기를 상당히 오해한 듯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무려 5년 동안 그와 등을 대며 지냈다. 업계에서는 '게임계의 삼성'과 그렇게 지내면 불편하지 않느냐고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SNS를 통해 안부를 물어왔고 필자도 그리했다.

그의 경영 철학을 들여다 보면 순박함을 뛰어넘어 상식을 파괴하는 일들도 적지 않았다. 그가운데 근래의 일로는 넥슨을 매각하겠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결과적으로 가격이 맞지 않아 없었던 일이 됐는지, 아니면 그의 마음이 뒤늦게 돌아섰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의 결정은 항시 전광석화 같이 빠르게 번뜩였다.

그리 보니까, ‘던전 앤 파이터’와 ‘서든어택’ 등도 그의 이같은 순발력에 의해 넥슨에 편입되고 자리하게 된 건 아닌지 궁금해 진다. 그는 타고난 승부사였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싸움터를 가리지 않았다. 또 싸움을 하게 되면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믿고 실천한 그다. 그러다보니 순박함과 동화에 나오는 소년같은 그의 이미지가 괴짜 경영자,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그같은 승부사 기질이 오늘날의 넥슨이 있게 한 힘의 원천이 되지 않았을까 미뤄 짐작해 본다.

달포 전, SNS에서 그의 생일이라고 알려 왔다. 그에게 축하 인사를 늘 해 왔던 터라 메시지를 올리려 하려다, 오후로 미루게 됐다.  그날은 솔직히 왠지 망설여졌다. 그리고 생일 인사를 놓치고 말았다. 끝내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 그를 그렇게 보낸 게 못내 마음이 아프다.

당신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 게임산업의 미래가 마치 안개속으로 빠져 든 것 처럼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신 같은 선각자가 산업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단  제도권의 언어를 쓰는 김 정주였으면 좋겠고.

그의 명복을 빈다. 

[본지 발행인 겸 뉴스 1에디터 inmo@tgdaily.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