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들이 원하는 것은 진솔한 대화와 공감 … 트럭 시위 대신 트럭 응원 등장하길

"한 선원이 심각한 위장병에 걸렸다. 다행히 그 배에는 의사 한 명이 있었다. 의사는 자신의 의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기뻐했다. 그는 환자를 진찰하고 맹장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선원들이 보는 앞에서 뛰어난 의술로 수술 부위를 절개하고 맹장을 떼어냈다. 그는 수술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선원들에게 흥미 있는 해부학적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줬다. 여태껏 인체의 내부구조를 본 적이 없던 선원들은 마냥 신기했다. 의사도 신이 나서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옆에서 보조하는 선원들은 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겁에 질려 있었다. 수술을 마치고 봉합을 할 때쯤 환자는 이미 죽은 상태로 수술대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의사는 자기 자랑에 열중한 나머지 환자가 죽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선원들은 의사의 권위에 눌려 환자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모비딕’으로 유명한 대작가 허먼 멜빌의 소설 ‘화이트 재킷’의 한 장면이다. 소설 속의 의사는 실력이 모자라 수술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소통 부재’였다. 수술 과정에서 선원들과 제대로 소통이 이뤄졌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요즘 게임계의 최대 화두는 '소통'이다. 너도나도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해 게임업계는 유저들과의 소통 부재로 인해 큰 홍역을 앓았다. 유저들이 쌓여있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여러 게임에서 유저들이 자발적인 모금으로 이른바 ‘트럭 시위’를 진행,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게임업체에 전달했다. 

이러한 유저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10시간 이상 개발자와 이용자 대표가 게임에 대해 토론하고 소통하는 간담회를 이끌어냈다. 또한 이용자 피드백 적용 실황을 공유하는 특별 페이지를 개설하는 게임이 등장하기도 했다.

유저들의 활동은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트럭시위가 진행됐던 게임들의 이용자 요구사항을 살펴보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범위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았다. 이에 따라 이상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12월 15일 발의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화 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에는 공청회까지 마쳤기에 법안 심사를 거쳐 조만간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게임 유저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대선 후보들까지 나섰다. 여야 후보들은 확률형 아이템의 투명한 정보공개로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세부 공약을 살펴보면 어느 쪽이 유저들 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유저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 소중할 한 표를 행사해야 할 이유가 한가지 더 늘어난 셈이다. 

그간 게임계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소통 부재였다. 최근 불거졌던 위메이드 사태도 결국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 달 위메이드는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유동화 이슈 등으로 주가 급락 사태를 겪었다. 실적 발표 이후 이틀간 주가가 40% 이상 폭락하자 투자자들은 회사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블록체인 기반의 플레이투언(P2E) 게임 붐을 주도하며 주식시장에서 최고의 스타기업으로 주목받던 위메이드는 하루 아침에 공공의 적으로 몰린 셈이다. 

이에 장현국 대표는 서둘러 온라인으로 ‘위메이드 미디어 간담회’를 열고 직접 소통에 나섰다. 그는 우선 위믹스 대량 매도와 관련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각에서 위메이드 매출 중 위믹스 유동화를 통한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긴 시간동안 진행된 간담회를 통해 그는 진솔하게 주요 사업 부문에 대해 설명하고 쏟아지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적절한 소통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돈만 버는 게임 보다는 게임을 즐겁게 하다보니 돈이 들어오는 게임(블록체인 게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그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전 온라인 게임 ‘로스트아크’가 지하철 판교역을 장식해 눈길을 끌었다. 유저들의 사랑이 담긴 응원 광고가 판교역 곳곳에 배치된 것. 이는 게임업체와 유저간 신뢰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이번 광고는 놀랍게도 유저들이 개발진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게시한 것이다. 이 작품은 지속적인 유저 친화적인 게임 정책을 통해 서비스 3주년을 맞았음에도 하향세 없이 오히려 유저 수가 급등하는 특별한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이러한 개발진의 노력에 보답하고자 유저들은 지난해 서비스 3주년을 계기로 지하철 광고 이벤트를 기획했으며, 이를 실행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모금한 것이다. 

이처럼 게임 개발자들이 좋은 게임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끊임없이 유저들과 진솔한 소통을 이어간다면 트럭시위가 아니라 응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게임업계는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들어 주요 게임업체들이 소통 행보에 힘을 쏟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된다면 게임업체들의 사옥 앞에는 트럭 시위 대신 트럭 응원이 이어질 것이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게임스데일리 김종윤 뉴스2 에디터 jykim@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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