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지정 사례 '0'ㆍ예산 배정조차 없어 … e스포츠 산업 육성 위해 반드시 필요해

문화체육관광부가 e스포츠 산업 발전을 위해 지정하는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시행령의 문제로 인해 e스포츠 산업 관련 공교육 기관을 지원 대상에서 아예 배제하면서 관련 신입생을 모집중인 교육 현장 일선은 예산 부족으로 시름하고 있다.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은 지난 2012년 제정된 ‘e스포츠(전자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제도다. 법안 제10조 ‘e스포츠 관련 전문인력의 양성’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e스포츠 진흥에 필요한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와 관련한 기관을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해 예산의 범위에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현재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된 국내 교육 기관은 한 곳도 없으며, 이와 관련한 예산조차 제대로 편성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등학교 관계자는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등록하고 싶어 지난달 관련 서류를 준비해 공문을 발송했지만 반려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반려 사유는 고등학교는 지원 대상에 해당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련 시행령은 양성기관으로 지정 가능한 대상을 ‘고등교육법’이 적용되는 학교 기관, 즉 대학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문화부장관이 e스포츠 관련 전문인력을 양성할 능력이 있다고 고시한 기관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지만, 현재 이를 통해 선정된 고등학교는 한 곳도 없다.

#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해야 … "국가의 사회 제도 문제"

취재에 응한 한 학교는 지난 2019년 교육부의 학과 재구조화 사업에 선정돼 e스포츠학과를 개설하고 올해부터 약 40명의 신입생을 모집해 교육 중이다. 2년간 약 5억원의 예산을 획득해 설비 및 기자재를 갖췄으나, 실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방과 후 학교’에 활용할 비용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이 학교의 1학년 신입생은 총 40명이며, e스포츠 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는 3명이다. 강사 1명당 1년에 약 120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며, 강사가 학생 10명씩을 담당한다면 학생 한 명당 약 10만원의 비용이 필요한 셈이다. 한 마디로 e스포츠 교육을 위한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학생 1명 당 한 학기에 약 5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처럼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문화부에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 지정을 신청했으나, 이를 반려당하며 당장 내년도부터 정상적인 방과 후 학교 운영이 불투명하다. 특히 내년에도 신입생을 모집한다면 강사를 더 충원해야 하기 때문에 필요 비용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에 일정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 중이지만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한 학생에게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러운 형국이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이 교육을 받으러 왔는데 경제적 요인 때문에 받을 수 없다면 이는 국가의 사회 제도 문제”라며 “적어도 공교육만큼은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할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한다”고 현재 상황을 지적했다. 

또한 최근 e스포츠 구단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 등 사교육 기관을 통한 e스포츠 꿈나무 양성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이 때문에 너무 이른 시기에 학업을 포기하고 이에 매달리게 된다고 설명하며, “학생들이 학업과 e스포츠를 병행할 수 있도록 공교육 기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1년에 많아야 약 50명의 선수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학생들은 학습권을 포기하고 꿈에 도전했지만 실패를 겪고 좌절할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또한 “장기적으로 e스포츠를 국가 산업으로 육성하고 싶다면 학교 스포츠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관련 기관에 대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부에 반려당한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 공문.
문화부에 반려당한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 공문.

# 2022년 예산 배정 없어 … 내년까지도 타개책 마땅찮다

문화부 역시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해법이 마땅치 않은 상태다. 관련 부처 관계자는 “e스포츠 진흥법이 제정될 당시와 현재 많이 달라진 점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법안 제정 당시 고등학교에는 e스포츠와 관련한 학과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논의된 것으로 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현재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된 기관이 있냐는 질문에 “없는 것으로 안다”며, “애초에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을 지정해도 이에 배정된 예산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2021년 예산은 지원받지 못했으며, 이미 편성이 끝난 2022년 예산안에도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에는 반영된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양성기관으로 지정을 했지만 아무 지원을 해주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면서 “기획재정부에 예산 요청을 하고 있지만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 제도가 법령에 있다는 근거만으로는 예산을 받기 힘든 실정”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한 예산 반영을 위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고용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21일 ‘2021 e스포츠 교육기관 간담회’를 통해 이와 관련된 의견을 수렴하는 장소를 마련했다. 관련 일선 고등학교 및 연구 기관이 모여 현 상황에 대한 의견 공유 및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약 2시간가량의 긴 토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실질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한 채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 또는 “법안이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내년까지는 힘들 것 같다”는 의견만 재확인했다.

관계자는 “학생들의 학습권, e스포츠 산업 육성 등 다양한 문제가 ‘e스포츠 전문인력 양성기관’ 제도에 걸려있다”면서 “하루 빨리 제도권이 나서야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게임스데일리 이상민 기자 dltkdals@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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