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업체 10여년 만에 대기업 수준 … 안정과 도전의 균형추 잘 잡아야

10여년 전만 해도 게임업계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형편없는 박봉으로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게임 개발에 나선 이들은 주변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좋아서' 또는 '게임으로 대박의 꿈을 이루기 위해'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임업계에는 오래전부터 크런치모드라는 관행이 있었다. 개발이 완료될때가지 그야말로 장시간 모든 열악한 조건을 견뎌내며 영혼을 불살라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얼마나 유명한 지 야권의 대통령후보로 나선 윤석렬 전 검창총장이 게임업계 인물과 만나 나눴다는 이야기가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는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나 보니 게임을 개발하려면 주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을 일해야 할 정도라고 발언을 한 것. 하지만 업계에서는 윤 전 총장의 발언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120시간은 업계 관행인 크런치 모드의 영역도 한참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환경도 많이 변했다. 이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근무환경이 개선됐고 평균연봉도 1억원을 바라보는 경지까지 올라섰다. 물론 모든 게임업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톱 5에 들어가는 업체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게임업계가 얼마나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물론 게임업계의 임금이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 대기업의 연봉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이미 지난 2019년 15개 대기업의 평균연봉은 1억원을 넘어섰다. 그 중 삼성전자가 1억27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SK에너지와 SK텔레콤 1억2100원으로 나란히 2위를 차지하는 등 게임업계와는 큰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게임업체 임직원들의 임금이 수직상승하고 있는 것이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해 유지한다는 것이 기업의 발전에 큰 힘이 될 수 있지만, 역으로 봤을 때 그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그만큼 큰 리스크로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 대다수의 게임업체들이 전년동기 대비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이는 흥행 신작 부재, 기존작품 매출 감소 등의 여파도 있었지만 연초 경쟁적으로 이뤄진 연봉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넷마블은 상반기 인건비로 2980억원(1분기 1434억원, 2분기 1546억원)을 지출했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 16.54% 늘어난 것이다. 연봉인상 이슈가 본격 반영된 2분기만 놓고 보면 전년동기 대비 17.8%가 상승했다. 1인 평균 급여액도 지난해 상반기 3200만원에서 올 상반기 4000만원으로 늘었다. 

엔씨소프트의 상반기 인건비는 전년동기 대비 11.85% 증가한 4185억원(1분기 2325억원, 2분기 1859억원)에 달했다. 펄어비스는 상반기 인건비로 전년동기 대비 30% 늘어난 822억원을 사용했다. 2분기 기준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은 51.8%에 달했다. 

이 외에도 컴투스가 상반기 인건비로 493억원, 위메이드 323억원, 웹젠 307억원 등 전년동기 대비 수십 퍼센트 증가했다. 이로 인해 다수의 업체들이 영업비용이 크게 늘어났다.

게임업체들의 인건비 지출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IT 인재 채용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게임 시장 트렌드 역시 수 많은 인원이 장시간 개발하는 대작 MMORPG 위주이다. 

하지만 고임금이 반드시 뛰어난 성과를 거두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시스템에 안주하고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질 때 결과물은 오히려 평범해 질 수 있다. 이미 많은 선두업체들이 이러한 '승자의 저주'에 빠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예가 적지 않다. 

때문에 안정적이 기반 위에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두개의 명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잘 증명해 준 업체가 있다. 

바로 최근 주식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크래프톤이다. 이 회사는 '배틀그라운드'라는 걸출한 작품 하나로 세계시장을 주름잡았고 결국 코스피에 상장돼 단숨에 엔씨소프트를 제치고 게임업계 대장주로 뛰어올랐다.

그런데 이 회사가 처음부터 이렇게 주목받았던 것은 아니다.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사람들은 외부에서 인수된 작은 개발팀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남들이 '안될 것'이라고 외면할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작품에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성과를 이뤄냈다.

당시 그들에게 하루 8시간 근무와 수천만원의 연봉 따위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혼신의 힘을 쏟아 새로운 작품을 완성시키고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그것도 상상 이상의 명예와 부를 가져다 준 것이다. 

이 사례를 놓고 봤을 때 반드시 고액 연봉이 좋을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개발자 모두에게 헝그리정신을 강조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최고의 인재를 영입해 그들이 모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동기를 부여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영입한 우수한 인재들이 큰 꿈을 품고 도전하며 열정을 바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 않을까. 

[더게임스데일리 김병억 편집담당 이사  bekim@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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