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전 재산 사회 기부 천명…부(富)란 한 여름 밤의 꿈에 그치는 것

세계적인 부호들의 기부클럽인 ‘ 더 기빙 플레지는 지난 2010년 출범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재무 투자자 워런 버핏 등이 참여해 만든 이 기부클럽은 출범 초기부터 메스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 왔다. 무엇보다 회원들의 면면도 그랬지만,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재산이 적어도 10억 달러 이상은 돼야 함은 물론 이가운데 상당 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야 하는 조건이 따라 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곳에 가입한 회원 수는 약 22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최근 김 범수 카카오 의장과 우아한 형제들의 김 봉진 창업자가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김 범수 의장은 기부 서약서를 통해 “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특집 기사를 보며 창업의 꿈을 키워왔다” 며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부부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김 범수, 그는 IT산업계의 풍운아다. 이름조차 생소한 한게임이란 웹보드 게임 플랫폼을 처음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고만고만한 게임이 또 나온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유저들의 피드백이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잘 나간다는 회사를 때려 치우고 나온 그였기에 실망도 컸다. 하지만 이도 잠시 뿐, 그는 다시 게임 개발에 매달렸다. 그의 옆에는 문 태식(카카오 VX대표)이란 후배가 있었고, 또다른 후배인 남궁 훈 (카카오 게임즈 대표)은 자금 및 PC방 관리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했다. 한양대 정문 앞, 허름한 지하 사무실은 그렇게 굴러갔다. 그럼에도 김 범수는 그 빈한 공간에서도 꿈을 지우지 않았다.

그런 처지는 나중에 김 범수와 NHN을 만들기 이전, 포털 순위에서 밑바닥을 기며 와신상담해 온 검색포털 네이버 창업자인 이 해진의 심정도 비슷했다. 그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체 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그 판을 뒤집는 절묘의 수를 제시한 건 김 범수였다. 돈은 되지 않지만 회원 수가 적지 않은 그의 ‘ 한게임’ 과 이 해진의 ‘ 네이버’ 의 합병을 전격 제안한 것이다.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서 탄생한 NHN은 단숨에 포털 판세를 뒤집었다. 후순위에서도 한참 뒤에 머물던 NHN의 네이버가 포털 순위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이후 포털시장은 네이버에 의해 요동을 쳤다.

이렇게 되자 김 범수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눈을 해외로 돌렸다. 이번엔 가늠해 볼 수 없는 대륙, 중국시장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 포털과 게임시장은 높은 벽이 아니었다. 그는 그래서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거의 동시에 진행된 미국 시장 진출도 초기엔 순조로운 듯 했다. 중견기업치곤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하지만 현지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큰 화근이 됐다. 해외시장 진출 사업이 총체적인 난국을 맞이한 것이다. 주변에선 경영진에 대한 인책론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그 몫을 담당해야 했다.

김 범수가 사내의 불란을 없애겠다며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는 때 아닌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한동안 그의 소식은 잠잠하다 못해 업계에서는 잊혀진 인물이 되다시피 했다. 그를 만날래야 만날 수가 없었다. 한참 이후 그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았다. 그가 있는 곳을 알아보니 자그마한 구멍가게였다. 그리고는 SNS 사업을 준비중이라며 카카오란 회사를 소개했다.

김 범수의 성장 배경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보다는 그가 평생 라이벌로 생각한 스티브 잡스에 더 가깝다. 빌 게이츠의 가문을 보면 요즘 말로 표현하면 금수저에 가깝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다소 복잡하다. 대학을 중퇴한 채 가까스로 게임업체에 들어간 게 고작 행운이었고, 그게 애플 창업의 동인이 됐다. 그리고 한동안 낭인 생활도 했다.

김 범수는 평범한 가정에서 2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명문대를 나왔지만, 스스로 시험 운이 좋았다고 했다. 이 해진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좋은 친구를 그 시기에 만났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어려운 시기에 가정의 소중함을 더 알게 됐고, 그런 측면에서 빌과 멜린다 게이츠 부부를 존경하게 됐다고 했다.

김 범수의 재산 규모는 약 10조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 갑부 3위 안에 드는 수준이다. 그런 그가 자기 재산의 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자녀들과는 이 문제에 대해 얘기를 마친 상태라고 했다.

게임계에는 황금궤를 꿰찬 인물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상당수가 ‘ 먹튀’ 라는 좋지 못한 소리를 듣고 있다. 아이템을 일궈서 그 것을 시장에 내다 팔아 이익을 챙기는 벤처기업의 속성을 고려하면 ‘ 먹튀’ 라는 이름의 굴레는 천박하다 못해 맞지 않다. 하지만 챙겨 나간 보따리가 보편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규모라고 할 경우엔 얘기가 다르다. 아무리 정당하게 거머줬다 하더라도 그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세상 사람들의 돌팔매질로 성한 곳이 없는 게임 산업은 그 어떤 아이템 보다 가꾸고 포장하고 재 단장해야 한다. 시장은 있으나 문화는 없고, 사람은 있으나 게임인이 없는, 마치 신기루와 같은 곳이다. 다른 업종에서는 아주 흔한 기업문화라는 것도 이곳엔 없다. 어느 누구 한사람 거들 떠 보는 사람이 없다. 이 정도의 산업규모라면 격에 맞는 일간지도 있을 법하지만 이곳엔 없다. 동토와도 같은 이곳을 어느 누가 기웃거리겠나.

게임은 생태계적으로 보면 기부 문화로 비롯됐다. 게임이란 장르를 처음 만들어낸 미국의 핵 물리학자 윌리엄 하긴보섬은 미래 인류에게 새로운 놀이 문화를 안겨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저작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게임의 대중화를 실현했다.

김 범수는 최근 이런 얘기를 했다. “목표했던 부를 얻고 난 뒤, 인생의 방향을 잃고 한동안 방황해야 했다” 한다. 그렇다. ()는 한여름 밤의 꿈 정도여야 행복한 것이다. ‘ 먹튀라는 흉한 괴물로 산업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본지 발행인 겸 뉴스 1에디터 inmo@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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