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 유저 불신 높아 … 공정한 게임 플레이 보장해야

오래 전, 어떤 이가 내게 왜 게임업종에 종사하게 되었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내 답변은, 게임은 ‘공정한 세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내 생각에 여타 업종들은 나름대로 ‘산업화’되어 정형화 된 프로세스가 존재하고, 기득권이 있었으며, 능력보다 소위 연줄과 돈의 힘에 의해 성공 여부가 좌우되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개발자로서 첫 발을 디딘 ‘텍스트머드’ 장르를 필두로 해 1990년대 말을 기준으로 새롭게 태동된 ‘온라인게임’이라는 장르는 어느 누구도 가본적 없는 새로운 미개척지와도 같았다. 기득권이 없고, 당연히 연줄이 존재하기도 어려웠으며, 결국 누가 먼저 깃발을 꽂느냐에 따라 땅의 주인이 정해지는 그런 모험의 세계였다. 특히, 전국 각지의 PC방을 포함하여 한국의 발달된 인터넷 인프라는, 오히려 여타 국가보다 더 유리한 시장입지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메리트가 되었다. 온라인게임 분야는 콘솔과 패키지게임 인프라가 발달한 북미 유럽이나 일본보다 한국이 앞서나갈 수 있는 틈새시장이었고, 결국 2000년대 초반 한국이 온라인게임의 종주국으로서 잠시나마 위세를 떨치는 계기가 됐다.

게임업계뿐 아니라, 게임이라는 세계 자체도 나름 공정함에 기반을 두었다. 같은 규칙 하에서 누가 더 잘 하느냐를 겨룰 수 있었다. 순간적인 반응과 조작을 잘 하는 사람이 유리한 슈팅이나 액션 장르, 전략적인 두뇌를 활용해야 유리한 퍼즐이나 시뮬레이션 장르 등 각 장르마다 ‘기회의 균등’이란 공정한 룰 속에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찾았고, 경쟁해 나갔다. 내가 당시 발을 담근 MMORPG라는 장르 역시 많은 시간을 들여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할수록 강자가 될 수 있는 공정한 세계였으며, 개발자가 아닌 유저로서도 나는 그 세계 내에서 공정한 경쟁을 즐기곤 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 온라인게임에도 새로운 물결이 들어왔다. 현금 거래를 통해 오랜 시간 노력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게임 내 아이템, 나아가 캐릭터 자체까지도 유저 간 매매되기 시작했고, 그를 위한 아이템거래 전문 사이트들이 등장했으며, 급기야 현금으로 급속한 성장이 가능해지는 부분유료화가 월정액이라는 온라인게임의 상용화 모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현금을 많이 투자하면 게임 내에서도 급격히 강해지는 자본주의의 그림자가 게임 세계 내로 파고들면서, 게임 내의 권력 관계도, 게임을 즐기는 방법도, 게임의 주 타깃 유저도 급격히 재편됐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하고자 하는 게임회사들의 이해타산은 돈은 있어도 시간이 부족한 직장인 유저들의 니즈와 맞물려졌으며, 특히 확률에 의한 획득이라는 게임 시스템이 부분유료화와 결부돼 사회적 이슈로 이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흐름은 고착화돼 결국 현재 한국 내 각 플랫폼에서 게임 순위는 이러한 부분유료화 게임들에 의해 대부분이 잠식된 상태다.

현 상황이 공정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게임 자체가 제공하는 정해진 룰 속에서 경쟁하고 즐기는 것이 게임의 원 취지에 맞는다라는 이도 있고, 순발력이나 전략적 두뇌와 마찬가지로 자본 역시 유저의 역량 중 하나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돈을 많이 쓰는 이가 더 큰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쪽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게임들이 있고, 또한 각종 차트에서 순위권에 오른 게임들 중 상당수도 그러하기에, 이러한 논란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을 발표했으며, 게임 이용자 권익증진에 대한 내용 중 하나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를 포함시켰다. 현재 자율규제로 실시 중인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올 하반기에 의무화하고, 개정 중인 게임법에도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 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넣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확률 정보 표시의 의무화가 과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구설수에 오른 게임이나 업체들은 이미 확률 정보 표시를 잘 하고 있다. 2020년 4월까지 자율규제 미 준수 게임으로 지적을 가장 많이 받은 게임들이 ‘도타2’(18회), ‘브롤스타즈’(14회), ‘블랙스쿼드’(9회), ‘카운터스트라이크:글로벌 오펜시브’(9회) 등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해 매출 상위권에 오른 게임들에 비해 비교적 욕을 많이 먹지 않은 게임들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물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돈을 지불하는 입장에선 어느 정도의 기대 값이라면 내가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라는 기준이 필요하기에, 아무 정보 없이 확률형 아이템에 베팅하는 것보다 분명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데, 유저들이 확률형 아이템에 갖는 불만 중에서 확률 정보 표시 여부는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다. 그보다는 ‘도박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확률’에 의한 지나친 과금 유도, 확률형 아이템의 높은 비중에 의한 게임 밸런스 붕괴, 그리고 공표된 확률을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불신 등이 더 커 보인다. 지나치게 낮은 확률에 대해 제한을 두는 것도 기준을 잡기 어려울 것이며, 개별 확률형 아이템의 밸런스 영향도를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고, 공표된 확률의 신빙성에 대한 의혹은 더 큰 문제이다. 식품에서는 원산지 표기나 유통기한 표시가 법제화 되어있기에, 단속도 하고 위반 시 과태료, 과징금도 부과가 된다. 그런데 게임 확률 정보가 제대로 표시됐는지는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내부고발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보인다. 게임업계에서는 유저들의 특정 아이템 분포를 보며 아이템 확률을 수시로 ‘잠수패치’한다는 소문이 돌고,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유저들의 불신은 이미 팽배해 있다.

상황은 이해가 간다. 그간 정부는 게임이라는 주제를 ‘진흥’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규제’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를 놓고 부단한 내부 진통을 겪었고, 이번 발표는 그 중 ‘진흥’에 역점을 둔 중장기 정책 방향의 제시였다. 다만 그간 규제의 목소리를 높여온 여가부를 포함한 일부 우려 섞인 시각을 감안하여,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나 부적절한 게임광고 제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도 포함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문제 해결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확률형 아이템의 문제는 도박성과 연계된 사회적 이슈로서뿐 아니라, 게임의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어느 수준이 적절한 것인가를 정의하기는 물론 어려운 일이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개발사의 입장에서라기보다 유저의 입장에서, 특히 즐거운 여가생활로서 공정한 게임 플레이를 기대하는 대다수의 유저 입장에서, 장차 우리가 플레이 하게 될 게임들이 우리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수준을 만족시켜주길 고대해 마지않는다.

김정주 노리아 대표 rococo@nor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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