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5월 총회서 채택 여부 '결론'…업계, 앞서가지 말아야 '한 목소리'

오는 5월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질병 분류를 앞두고 이에 대한 위기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사건·사고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는 것은 물론 게임을 중독 물질로 몰아가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게임 업계는 이 같은 질병 분류의 근거 부족 및 확대 해석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만연한 부정적 시각을 되돌리기에는 그 이상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WHO의 게임 질병 분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제도권에 대한 각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더 나아가 제도권의 주도로 업계가 함께 게임의 가치를 올바르게 알리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WHO는 국제질병분류(ICD)의 제 11차 개정안에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5월 개최되는 세계 보건 총회에서 최종 승인이 날 경우 2022년부터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5월 총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이 같은 게임 질병 관리 타당성에 힘을 싣는 부정적인 여론 몰이가 이뤄지는 것 같다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게임 중독으로 인해 뇌의 일부분이 붓고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일부 매체에선 WHO의 게임 질병 코드화 움직임을 뒷받침할 근거라면서 게임 중독에 대해 위험성과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 중독 프레임 씌우기 늘어

해당 보도에 등장한 서울시보라매병원 연구진은 게임 중독자의 뇌 영상과 정상인을 비교한 결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크기가 정상인보다 14%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판단력이나 기분 조절과 연관된 두정엽 일부 용적도 17% 크다면서 게임 중독이 뇌 구조를 변경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연구진은 게임 중독으로 인해 과부하가 생겨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부은 것으로, 이 같은 뇌 구조의 변화로 감정이나 충동 조절이 더 어려워져 중독에서 벗어나오기 더욱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 결과와 해석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장인 이경민 교수는 직접 진행한 연구가 아니기에 자세히 결과를 들여 봐야 하지만, 뇌의 부피가 커진 게 나쁜 행동을 유발한다는 근거가 없어 다소 무리한 해석인 것 같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보라매병원 연구진의 해석은 오히려 해마의 크기가 커질수록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일반론과는 역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게임을 통해 뇌 기능이 향상된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와도 대조가 된다는 것이다.

# 근거 부족 비판 거세

게임업계는 이미 게임 중독에 대해 명확히 규정되지도 않은 명칭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향한 중독 프레임은 계속돼왔으며 이번 WHO의 질병화 분류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이를 더욱 옥죄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WHO의 게임 질병 코드화는 이미 근거가 부족한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게임 산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란 우려도 잇따랐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ICD-11 초안에 대해 게임 장애를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게임 행위의 패턴으로 정의하고 있어 지나치게 포괄적인 구분이라고 지적했다.

또 게임은 알콜, 마약 같은 다른 물질중독과 다르게 우울증, ADHD 등 공존질환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아 게임 중독 자체를 질환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WHO의 진단 기준은 중독의 핵심적인 증상인 갈망, 내성, 금단증상 등을 제거하고 일상생활 방해를 중독처럼 치부한다"면서 "의학적으로 공존질환과 구분해 종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국내외에서 게임 과몰입 및 게임 장애 등에 대해 다방면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여전히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가시적인 발전 없는 상태의 혼란 상태에서의 무비판적 수용이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연구 책임을 담당하고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진행한 게임 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에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게임 질병코드화에 대한 국내외 연구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재분류했다. 이를 통해 연구 경향성을 파악하고 향후 게임 질병코드화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에서 과몰입 및 중독에 관한 입장은 무분별한 수용이 압도적으로 높은 85.9%의 비율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적인 경향과는 달리 국내에서의 연구는 대부분 과몰입 개념을 당연시하거나 옹호하는 입장이었다는 것.

보고서에 따르면 게임이 플랫폼·유형별 플레이 경험이 매우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장르나 특정 게임을 지목하는 연구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게임·장르 자체에서의 중독의 원인이나 인과관계를 찾기보다는 연구 진행 당시의 가장 인기가 많은 장르를 무분별하게 채택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MMORPG를 거론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으나 다른 게임에 비해 MMORPG가 더 강한 중독성을 보인다는 언급은 없었다는 것. 특정 장르로부터 중독성을 찾는다기보다는 동시대의 보편적 게임 장르를 선택해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현재 모바일게임 시장의 규모가 타 플랫폼 대비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모바일게임을 중독의 대상으로 연구한 경우는 별로 없기도 했다는 것.

특히 그간 진행된 연구들의 게임 장애에 대한 학술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학술자들 사이에서도 혼란이 여전한 상태라는 결과를 내놨다. 앞서 미국 정신의학 협회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인 DSM-5에서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된 후 5년이 지났으나 크게 변화한 것도, 보다 분명해진 것도 없는 상태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어떤 과정을 거쳐 ICD-11 초안이 작성되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게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학술적 연구가 ICD-11을 유도했다기보다는, WHO의 (정치적) 결정이 학술담론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는 지적이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제도권 달라진 모습 보여야

WHO의 게임 질병 코드가 국내에 도입될 경우 이에따른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규제가 잇따라 적용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같은 악영향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역시 막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해당 보고서는 셧다운제 및 흡연 질병 코드화의 비교 유추 등을 기반으로 게임시장 위축 규모를 산출했다. 이에 따르면 2023년 1조 7245억원, 2024년 3조 4021억원, 2025년 5조 402억원 등 총 10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전망됐다는 것이다.

특히 게임 산업에 대한 투자나 의욕을 저하시킬 여지가 충분히 존재하며, 이는 현재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제도권 등이 무비판적으로 질병화 코드 도입을 수용하거나 부정적 선입견을 견지한다는 것도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WHO의 게임 장애 질병화를 바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는 것.

반면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게임 산업에 대해 국민들이 오해를 안 했으면 좋겠다면서 게임에는 부작용도 있지만, 긍정적인 면도 굉장히 많이 있다면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5년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게임 중독 광고는 제도권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광고로 송출함에 따라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제도권이 이제는 게임의 가치를 제고하고 인식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과거와는 상반되는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등과 같은 업계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협단체나 실제 업계 구성원들과 함께 이 같은 내용의 광고를 선보이거나 공익 활동을 펼치는 게 제시되고 있다.

[더게임스 이주환 기자 ejohn@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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