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가치평가 시스템 시대 변화 반영해야

 

게임업계가 어렵다는 말은 예전에도 있어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늘상 들어왔던 말이, “지금이 가장 힘든 때”라는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게임들이 명멸해 갔으며, 숱한 회사들이 성패의 기로에 서서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혹은 쓰디쓴 술잔을 기울여야 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도전은 멋있게 보이지만, 실은 큰 위험 속으로 온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게임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이들이 가장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장벽은 역시 자금이다. 재능과 열정과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가장 큰 난관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대부분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거나 투자받아야 하는데, 콘텐츠사업의 특성상 개발하고자 하는 목표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기 어려워 자금 확보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희박하다.

영화산업의 경우엔 시나리오의 우수성이나 감독 등의 유명세를 통해 어느 정도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고 투자를 받게 되지만, 게임산업의 경우 개발하고자 하는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얼마나 성공할지, 얼마나 수익을 낼 수 있을지를 과연 누가 알 수 있을까. 물론 유수의 게임 퍼블리셔들은 그에 대한 고민을 오랜 시간 해왔으니 가장 근접한 기준을 나름대로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수도 없이 개발 중인 게임을 평가해온 그들의 높디높은 허들을 통과한 게임들 중에서조차 실패한 케이스가 부지기수이다 보니, 완성되지 않은 콘텐츠를 사전에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짐작케 한다.

초기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신생 개발사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을 포함한 각종 금융권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발비가 인건비로 소진되는 콘텐츠산업의 특성상 담보가 있을 리 만무하고, 또한 금융권 내에 콘텐츠, 그것도 게임 콘텐츠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담당자가 배치되는 경우도 흔치 않다. 결국 판단을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기에 실제 투자나 융자로 이어지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해 온 것이 콘텐츠가치평가 시스템이다. 요약하자면, 개발사에서 개발 중인 콘텐츠의 가치평가를 진흥원에 신청하고, 진흥원은 평가 대상이 되는 프로젝트에 대해 자료를 받아 현 게임업계의 평가위원들에게 가치평가를 의뢰하여 평가보고서를 작성한 후, 평가보고서를 신청업체나 금융권에 배포해 개발 콘텐츠에 대한 투자, 융자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적어도 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평가에 참여한다는 측면에서, 금융권 독자적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객관성을 보장하는 장점이 있다 하겠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평가 시스템이 만들어진 지도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 PC 온라인게임 중심으로 기준들이 책정된 탓에 모바일게임 등이 온전히 평가받기 어렵다는 것도 있다. 또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분리된 경우 사업화 관련 평가 항목을 개발사에서 제공한 정보만으로는 평가하는 것이 부적절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평가 시스템을 통해 작성된 보고서를 토대로 실질적인 투자 또는 융자로 이어진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다. 정부에서도 게임업계의 최근 흐름을 반영해여 시대에 뒤떨어진 평가 모형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다 하니, 부디 업체들에게 실효성 있는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평가 시스템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물론, 무척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이라는 것은 능히 짐작 가능하다. 숱한 개발사들이 힘겹게 개발 중인 수많은 콘텐츠들, 그 가치를 완성도 되기 전에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러한 정보가 가장 필요한 것은 오히려 개발사들이 아닐까? 각 요소 별로 부족한 부분이나 리스크를 확인하고 사전에 수정, 대응해 성공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면서 다시금 곱씹어보게 되는 것이, 콘텐츠의 가치에 대한 기준이다. 아마 콘텐츠의 가치에 대해 금융권에서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투여된 자금에 대한 회수율이기에, 콘텐츠가 완성된 이후 매출 성과 지표가 그 기준이 될 것이다. 수익을 목표로 하는 수많은 개발사 입장에서도 나름 타당한 지표라 하겠다. 물론 유저 입장에서 콘텐츠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즐거운 경험 자체일 테지만 말이다.

콘텐츠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겐 둘도 없이 소중한 경험을 주는 콘텐츠가 누군가에겐 그저 지겨운 시간 낭비의 경험으로 비쳐질 수 있고, 콘텐츠 자체가 주는 재미의 영역도 있겠으나 콘텐츠를 매개체로 하여 유저 간에 만들어가는 재미의 영역도 존재한다. 그런데 무엇이든 시스템 화가 되면, 그 시스템에 맞추어 최적화된 것들이 양산되고 새로운 시도가 사장되는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가치평가 시스템의 취지도 존중하고 필요성도 인정하지만, 기존 성공작들의 성공 요소들로 조합된 게임보다는 다양한 도전과 새로운 경험, 게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발상의 콘텐츠들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 개선되길 바란다면 지나친 과욕일까.

[김정주 노리아 대표 rococo@nor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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