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작품' 여부 놓고 양측 평행선…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지혜 필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7년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맞으며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는 대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등 시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전 국민적인 위기극복 노력으로 인해 우리는 조기에 IMF의 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를 헤맨 것도 사실이다. 이들 중에는 젊은 나이에 명예퇴직을 당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나와서 할 만한 일은 많지 않았다. 식당을 차리는 것도 경쟁이 치열했고 기술도 없어 방황하는 그들에게 PC방은 마치 가뭄 속의 단비와 같았다. ‘정보화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육성정책으로 세계에서도 가장 빠르게 초고속통신망이 보급됐으며 이를 기반으로 PC방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PC방의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정부의 정보화사회 정책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청소년들을 열광시킨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97년 블리자드가 내놓은 ‘스타크’는 미국에 이어 국내에 상륙한 이후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국민게임’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대학생들은 당구 대신 PC방으로 몰려다니며 밤 새워 이 작품을 즐겼다.     

‘스타크’는 PC방 붐을 만들어준 1등 공신이 됐고 PC방이 늘어나면서 이 작품을 즐기는 유저들은 더욱 늘어났다. 그야말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정부의 통신망 지원정책과 불세출의 명작 ‘스타크’의 탄생은 PC방을 돈방석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인기로 인해 PC방은 전국적으로 2만개가 넘어설 정도로 성업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타크’의 인기는 아마추어들의 경기에서 벗어나 프로 선수들이 탄생할 정도로 대단했다. 이러한 ‘스타크’의 상품성에 케이블TV 방송사들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특별프로그램으로 편성됐던 e스포츠방송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되자 ‘온게임’이라는 게임 전용 방송채널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기에 이르렀고 뒤이어 MBC도 게임방송을 시작했다.

이런 ‘스타크’의 인기는 10년이 넘도록 유지됐고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 등 기라성 같은 e스포츠 스타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스타크’ 대회 결승전에 10만명의 관객이 몰린 사건은 지금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으로 남아있을 정도다.

‘스타크’를 떠올리면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다 못할 정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는 장사가 없는 법. 우리나라를 제외한 외국에서 ‘스타크’의 인기가 점차 사그라들면서 블리자드는 야심차게 ‘스타크래프트2’를 시장에 선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국내에서 형님과 같은 큰 영향력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리고 20년 만에 ‘스타크’의 화질을 개선하고 한국어를 입힌 리마스터버전이 세상에 나왔다. 블리자드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고 그만큼 완성도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블리자드는 ‘스타크’에 대한 우리 유저들의 뜨거운 관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본국보다도 더 먼저 이 작품을 우리나라에 선보이는 특혜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출시되면서 안타깝게도 PC방 업주들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 갈등의 핵심은 ‘스타크 리마스터’를 보는 양측의 입장차이라고 할 수 있다.

PC방은 이 리마스터버전이 새로운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이고 블리자드측은 이 작품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여된 만큼 엄연히 새 작품이라는 입장이다.

양측은 이 같은 입장차이를 좁혀보기 위해 최근 국회에서 좌담회를 열었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양측의 입장만 재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된 ‘스타크 리마스터’를 공짜로 제공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또 PC방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20년이 넘은 작품을 그래픽만 다르게 했다고 해서 다시 구매하라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또 상품을 사기 싫으면 안 사면 그만이라는 논리도 적용할 수 있다. 그야말로 공급과 수요라는 입장에서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방식은 양측 모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블리자드와 PC방을 놓고 봤을 때 더 힘이 없는 약자는 PC방업계다. 그렇다면 블리자드 측에서 먼저 조금 양보하고 그 다음에 PC방측도 최소한의 부담을 하는 방향으로 서로 한걸음씩 다가설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찾아봐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평행선이 계속된다면 ‘스타크2’가 나왔을 때 블리자드 측과 PC방의 갈등으로 인해 시장분위기가 냉랭했던 상황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것이다.

그러기에는 ‘스타크’가 게임인들에게 주는 의미가 너무 크다. 함께 게임시장을 만들어온 블리자드와 PC방 업계가 정말 초심으로 돌아가 손을 마주 잡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더게임스 김병억 뉴스2 에디터 bekim@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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