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적 셧다운제 시행 이후 어언 3년, 게임이 요즘처럼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또 있었을까. 라이엇게임즈코리아가 거금을 기부하면서 미국에서 ‘석가삼존도’를 환수해 올 때에도, 넥슨이 제주도에 게임박물관을 세우고, 푸르매재단과 함께 어린이재활병원을 걸립을 시작했을 때에도 이 정도의 이슈가 되지는 못했던 듯하다.

과거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렸다’는 모 방송사의 해프닝은 시작에 불과했다. 강제적 게임셧다운제는 물론이거니와 작년 여당 국회의원들이 잇따라 게임 규제를 필두로 하는 규제법을 입법 발의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여기에 최근 자신의 두살 난 자녀를 살해한 젊은 아버지가 PC방과 찜질방을 주기적으로 출입했다는 사실 하나 가지고 ‘게임중독 아버지가 자식을 살해했다’는 이야기가 일부 언론을 통해 퍼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게임개발자는 존경을 받고, 서구에서도 게임개발자는 엔지니어가 아닌 크리에이터로서 자부심을 갖고 지낸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지면을 장식하는 게임 관련 뉴스를 보면, 한국에서 게임개발자로 살기 위해서는 얼굴에 철판을 깔거나 수치심에 모자이크 처리를 요청해야 할 형국이다. 문화수출역군이라 칭송 받으며 세계를 선도하던 온라인게임 강국이란 미명은 어느덧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한국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물론 중국이라 하여 규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진흥’과 ‘규제’라는 두 마리의 토끼 중에서 ‘진흥’에 방점을 두고 규제를 보완해 나가는 기조이다.

아는 이들 중에도 중국에서 게임개발을 하고 있는 한국 개발자들이 다수 있다. 그들도 알고 있다. 더 이상 중국 개발자들에게 전수할 기술이 없다고 판단되면 자신은 여지없이 내쳐질 거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한국 개발사에서 몇 년은 힘들게 고생해야 모을 금액이 거기서는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현실이, 고급 기술을 해외에 유출한다는 도의적 비난 정도를 충분히 감수하도록 그들을 내몰고 있다. 그들이 한국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한국이 게임개발자를 내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다.

개발사들의 분위기도 유사하다. 돈 많은 회사는 외국에 상장하여 살 길을 찾아나갈 수도 있겠고, 대형 퍼블리셔는 한국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 시장의 개척에만 열을 올릴 것이다.

게임이 학생에게 유해한가 아닌가, 현 상황이 게임업계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 아닌가 등의 논의는 워낙 여러 곳에서 다루었으니 굳이 여기선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을 되새겨 보면, 최소 지금의 학생들보다는 더 뛰어 놀았고, 공부와 관련 없던 책도 더 읽었으며, 한편으론 더 방황할 수도 있는 ‘여가’가 주어졌던 듯하다. 굳이 게임이 아니라도 좋다.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여가생활을 보내게 할 날이, 과연 한국에 다시 올 수 있을까? 게임산업이 과거의 한국 만화산업과 같이 피폐해지고 나면, 다음 타깃은 TV나 인터넷이 되지 않을까?

언젠가 내 아이가 자라, 내가 만든 게임을 플레이 해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주위에 말하곤 했었다. 한국의 게임개발자들이, 내가 가졌던 그 소박한 꿈을 다시 꿀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한국에서 게임개발자로 산다는 것이, 자랑스럽진 않더라도 최소 부끄럽진 않을 날이, 정말로 다시 올 수 있을까?

[김정주 객원논설위원/노리아 대표 rococo@nor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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