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게임물등급위원장>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로 시작되는 삼국지의 칠보시(七步詩)는, ‘형제 부모 등 육친간 불화를 상징적으로 노래한 절창이다.
 
 조조의 3남 조식은 “아버지 문상을 제대로 안했으니 일곱걸음 걸을 동안 시를 지어라. 그렇잖으면 죽음이다”라는 큰 형 조비의 통첩을 받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 시를 지어 형을 부끄럽게 만든다.
 
 필자가 게임물등급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된 지 25일로 꼭 6개월이다. 지난 반년 동안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말고, 작은 성취와 승리에 자만하지 말며, 항상 온유하고 도량 있게’라는 수첩 첫 쪽의 글귀를 소리내어 읽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차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치고 올라오는 불안의 그림자가 있다. 잘 단합되지 않는 듯한, 심하게 말하면 모래알 같은 게임 관련 업계와 기관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대동단결’, ‘진정한 협력’을 외치는 양식있는 목소리들은 공염불이 되고,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점차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불안을 잠재웠지만, 때로는 비탈 위에, 칼날 위에 선 기분이었다.
 
 지난 며칠 간 겪은 일들로 이런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게임과 관련한 업계, 정책당국, 기관, 단체, 학계, 언론, 시민단체, 학부모단체는 저마다 입장은 다르더라도 최소한의 금도와 양식을 지켜야 하며, 지킬 수 있는 역량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보면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지난 9일 게임위 월요포럼 초청강연에서 여러 가지 고언을 준 게임관련 한 시민단체 책임자는 사흘 뒤 ‘문광부장관은 청소년을 게임산업진흥의 실험용 쥐로 만들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승복하지 않지만 ‘게임위가 업계에 편향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거나 ‘게임위 불신임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는 내용은 시민단체가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실험용 쥐’, ‘고양이에 생선’ 운운하는  표현에 이르면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정작 포럼 때는 그렇게 말하지 않더니, 성명서에서는 꼭 그렇게 모욕적인 표현을 해야 하나?
 
 지난 12일 한 신문의 인터뷰 기사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정부 기관의 조사 결과 드러난 영등위의 일부 문제점을 언급하고, “게임위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잘 하고자 한다”는 요지로 언급했는데, ‘과거 영등위의 3대 고질병이었던 유착...’ 식으로 기사화됐다. 영등위 위원들이 격앙했다. 필자는 기자에게 이런 정황을 설명한 뒤 영등위 위원들에게 뜻밖의 상처를 준 데 대해 사과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며칠 뒤 또 다른 신문은 인터뷰 기사에서 임의로 바뀐 발언내용을 재인용해 “게임위원장이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 못하고 있으며, 문제 발언으로 영등위와의 갈등을 촉발했다”고 지적했다. 한 언론이 임의로 쓰면, 또 다른 매체는 이를 근거로 ‘파문’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인다. 자연이 비판의 진정성에 공감하기 어렵게 된다.
 
 언론 뿐만 아니라 업체간, 기관간, 학자간, 그리고 당국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불신의 모습들이 너무 잦다. 나만 있고 우리는 없다.
 
 게임위가 간행하는 사외보명은 ‘게임We’다. 고립주의, 폐쇄주의, 배타주의 등 ‘나’만을 찾는 이른바 게임의 ‘Me이즘’을 탈피하고  공존주의, 개방주의, 포용주의의 ‘We이즘’을 추구하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손잡고 같이 가자는 뜻이다.
 
 이 자리를 빌어 게임 관련한 모든 사람과 집단들이 좀 더 자중자애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 품격있게 대할 것을 제안한다. 자칫하면 누워서 침뱉는 꼴 되기 쉽고, 본인은 뭐라고 생각할망정 남이 볼 때 ‘걸레가 행주를 나무라는 꼴’도 많은 세상이다. 우선 나부터 반성하고자 한다. 행여 같은 뿌리인데도 콩깍지로 콩을 삶아대는 일은 없었는지 살피고 자계하고 옷깃을 여미어야 하겠다.
 <keyman@gr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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